LEET 언어

1973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 로 대 웨이드 판결은 많은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이 판결에서 연방대법원은 7 대 2로 여성이 초기 임신 단계에서 헌법적으로 보호된 낙태권을 갖는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의 판결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여러 차원의 문제를 검토해야 한다.

먼저 제기되는 쟁점은 ⓐ “태아는 헌법상 사람인가?”이다. 연방대법원은 로 대 웨이드 판결에서 명백하게 태아가 사람임을 부정한다. 태아가 헌법상 사람이라면, 국가는 낙태를 금지할 수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일부 여건에서는 적극적으로 금지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논변은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귀결된다. 태아가 사람이라면, 임신으로 인해 모(母)의 생명이 위험할 때조차도 낙태는 금지되어야 한다.
헌법은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무고한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을 금지하는데, 이 경우 태아는 당연히 무고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론은 이미 법체계상 모의 생명이 위험에 처했을 때 낙태를 허용하는 것과 조화를 이룰 수 없다.

이어서 제기되는 쟁점은 ⓑ “태아는 헌법상 이익을 갖는가?”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아닌 개의 이익을 보호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있는 것처럼 태아가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헌법상 이익을 갖는다면 낙태를 금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논변도 문제가 있다. 아름다운 조각상을 부수는 것은 조각상이 지닌 가치를 파괴하는 것이고, 조각상을 연구하거나 감상하는 사람들의 이익에 크게 반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각상 자체가 이익을 갖는 것은 아니다. 반면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는 고통을 받지 않는 데 이익이 있다. 동물을 사냥하거나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하는 것은 동물에게 고통을 가함으로써 동물의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임신 초기 태아는 고통을 느낄 만큼 뇌가 충분히 발달하지 않았다. 물론 신체적 고통이 없더라도 이익에 반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태아에게 애정과 정서, 희망과 기대, 실망과 좌절을 품고 느낄 수 있는
의식 혹은 그에 준하는 지각력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능력이 원초적인 형태로 형성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임신 26주는 되어야 하고, 이 시기가 바로 로 대 웨이드 판결이 택하는 기준점이다. 그러므로 임신 초기 태아는 헌법상 이익을 갖는다고 볼수 없다.

그렇다면 임신 초기의 낙태는 아무런 도덕적인 문제를 야기하지 않는 순수한 자유의 영역에 속하는가? 그렇게 볼 수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낙태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며,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는 해서는 안 된다고 보되 특정한 경우에만 정당화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의 기저에는 인간 생명이 지닌 내재적 가치에 대한 경외가 깔려 있다. 사람들은 일단 시작된 인간 생명을 조기에 끊는 것은 신성모독에 비견될 정도로 매우 나쁜 일이라고 생각한다.
즉 인간 생명은 그 자체로 존중 되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로 대 웨이드 판결은 이러한 인간 생명의 내재적 가치를 헌법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핵심 쟁점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헌법이 인간 생명의 내재적 가치를 보호하고자 할 때 채택할수 있는 목표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책임의 목표다. 국가는 시민들에게 낙태 결정을 도덕적으로 중대한 사안으로 다룰것을 요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시민들은 자신의 결정에 인간생명의 내재적 가치가 연관되어 있음을 깨닫고 당장의 편의가 아닌, 심사숙고를 거친 확신에 근거해 반성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된다. 둘째, 순응의 목표다. 국가는 모든 시민들이 다수의 관점에서 인간 생명의
내재적 가치를 가장 잘 포착하고 존중하는 규칙과 관행에 복종하도록 할 수 있다. 순응의 목표를 따르면 다수가 허용 가능하다고 보는 상황에서는 낙태를 허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두 목표는 서로 양립하기 어렵다. 책임의 목표를 따르면 시민들이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자유롭게 결정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 이는 도덕적 책임을 지는 데 필수적이다. 순응의 목표를 따르면 시민들이 그와 같이 자유롭게 결정할 권리를 부정해야 한다. 그 대신 시민들은 인간 생명의 내재적 가치를 고양하는 법규에 복종해야 한다.

보기

헌법재판소는 낙태를 범죄로 규정한 형법 조항이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고 결정하였다. 해당 판결에서 헌법재판소는 임신한 여성의 임신 유지 혹은 종결 여부 결정은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ㆍ사회관을 바탕으로 자신이 처한 신체적ㆍ심리적ㆍ사회적ㆍ경제적 상황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한 결과를 반영하는 전인적 결정이라는 전제하에, 태아가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국가가 생명 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헌법재판소는 향후 모(母)가 낙태를 하는 데 요구되는 상담요건이나 숙려기간 등의 절차적 요건을 규정할지 여부는 입법부의 재량에 속한다고 결정하였다.

세포에서 가장 정교한 신호전달경로 중의 하나는 ‘사느냐 죽느 냐’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다. 세포가 심하게 손상된 경우, 또 는 수명을 다한 경우에는 종종 세포 스스로에 의해 조절되는 세 포 자살인 아포토시스(apoptosis)가 유도된다. 이 과정 동안에는 DNA가 잘리고 세포 내 소기관들과 세포질 성분이 조각난다. 세 포는 수축되고 갈라져 막으로 둘러싸인 조각으로 나누어지며, 이 들은 특수한 식(食)세포에 의해 흡수되고 소화되어 흔적을
남기 지 않고 사라진다.

아포토시스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후 배아를 형성하고 배아 가 생장하여 새로운 개체가 되는 일련의 과정인 개체의 발생 과 정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포토시 스의 메커니즘은 예쁜꼬마선충의 배아 발생을 연구하며 자세히 밝혀졌다. 몸의 길이가 1mm에 불과한 예쁜꼬마선충은 천여 개의 세포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각 세포의 기원을 모두 조사할 수 있다. 예쁜꼬마선충의 정상적인 발생 과정 동안에 정확히 131번 의 아포토시스가
일어난다. 그리고 이러한 아포토시스는 세포의 죽음을 이끄는 ‘자살 단백질’의 연속적인 활성화를 유도하는 일련 의 신호들에 의해 일어난다.

예쁜꼬마선충에서 Ced-3, Ced-4라고 이름 붙여진 아포토시스 관련 단백질들은 항상 세포 내에 존재하지만 평소에는 불활성된 상태이다. 세포 내의 소기관 중 하나인 미토콘드리아의 표면에 존재하는 Ced-9라는 단백질이 아포토시스를 조절하는 주요 조절 자의 역할을 한다. 죽음신호가 없는 경우에는 Ced-9가 활성화되 고, Ced-9의 작용이 Ced-4의 활성을 억제하여 아포토시스가 일 어나지 않게 된다. 반대로 세포가 죽음신호를 받으면 Ced-9가
불 활성화되고, 이에 따라 Ced-4이 활성화되며, Ced-4는 Ced-3을 활성화시킨다. Ced-3 단백질은 그 자체가 카스파아제(caspase)라 불리는 단백질분해효소이면서, 동시에 다른 단백질분해효소 및 DNA분해효소를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들 효소의 작용으 로 단백질과 DNA가 분해되고 세포가 수축되는 등의 변화가 나 타나면서 세포는 죽음을 맞이한다.

인간을 비롯한 포유류에서는 15종류 이상의 서로 다른 카스파 아제가 관여하는 여러 경로가 아포토시스를 일으킨다. 사용되는 경로는 세포에 따라, 그리고 아포토시스를 유발하는 신호의 종류 에 따라 달라진다. ㉠ 이 중 한 주요 경로에는 미토콘드리아 단백 질이 사용되는데, ㉡ 이 단백질은 미토콘드리아 외막에 통로를 만 들어 ㉢ 아포토시스를 촉진하는 단백질을
미토콘드리아 밖으로 방 출시킨다. 포유동물에서 이러한 미토콘드리아 아포토시스 과정에 는 예쁜꼬마선충의 Ced-3, Ced-4 및 Ced-9와 유사한 단백질들이 이용된다. 이외에도 ㉣ 이웃한 세포에서 전달받은 신호에 의해 작 동되어, 미토콘드리아 단백질을 사용하지 않고 카스파아제 및 기 타 분해효소를 활성화시키는 ㉤ 다른 아포토시스 경로가 있다.

이러한 세포의 자살 메커니즘은 모든 동물의 발생과 유지에 필 수적이다. 선충과 포유류 사이의 아포토시스 유전자의 유사성, 그 리고 포유류부터 곰팡이류, 단세포 생물인 효모까지 모든 생물에 서 아포토시스가 일어난다는 사실은 이 메커니즘이 동물의 진화 에서 매우 초기단계에 생겨났다는 것을 시사한다. 척추동물에서 아포토시스는 신경계의 발생, 면역계의 작동, 손과 발의 형태 형 성 등의 정상적인 진행에 필수적이다. 발생 중인 사지에서 일어 나는
아포토시스는 오리와 같은 물새들의 다리에 육지의 새들과 는 다른 형태의 물갈퀴를 만들어낸다. 사람의 경우에는 아포토시 스로 인해 발가락 사이에 있는 세포가 제거되어 발가락이 만들어 진다. 최근에는 인간의 질병과 아포토시스의 관계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파킨슨병이나 치매와 같은 신경계의 퇴행 성 질환에 아포토시스가 관여되어 있다는 증거들이 많이 있다.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melanoma) 중 일부가 예쁜꼬마선충의 Ced-4
단백질과 같은 기능을 하는 단백질의 결함에 의해 생겨난 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포유류에서는 크게 두 가지 경로로 아포토시스가 일어난 다. 첫 번째 경로는 외인성(外因性) 경로이다. 외인성 경로에 서는 세포의 표면에 존재하는 TNF 단백질 및 Fas 단백질이 죽음신호를 받아들이는 역할을 한다. 이웃한 세포로부터 유 발된 죽음신호가 TNF 단백질, Fas 단백질에 전달되면 세포 내에 존재하는 카스파아제-8이 활성화되고, 카스파아제-8은 다시 카스파아제-3을 활성화시킨다. 이어서 카스파아제-3은 다른 효소들을 연달아 활성화시키고
이 효소들의 작용으로 인해 단백질과 DNA가 분해된다.

두 번째 경로는 내인성(內因性) 경로이다. 내인성 경로에 서는 p53 단백질이 주요한 역할을 한다. 세포의 DNA가 심 각하게 손상되면 죽음신호가 발생하고 p53 단백질이 신호를 받아 Bax 단백질을 활성화시킨다. Bax 단백질은 평소에는 닫혀 있는 미토콘드리아 외막의 특정 통로를 열어주는 역할 을 한다. 이 통로가 열리면 미토콘드리아 내에 존재하던 시 토크롬-c 단백질이 미토콘드리아 밖으로 빠져나오는데, 시토 크롬-c는 단백질분해효소인
카스파아제-3을 활성화시킨다.

으뜸음을 바탕으로 하는 7개의 음들이 조합되어 형성된 장음계 와 단음계가 기본이 되는 온음계 시스템은 17, 18세기에 발전하 여 지금까지도 지배적인 작곡방식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일반적 으로 온음계 시스템 하에서는 어떤 음들이 동시에 화음으로 함께 연주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특정한 음들 뒤에 어떤 음들이 따라 와야 하는지에 관한 규칙이 있다. 온음계 시스템의 주요 구성 방 식은 협화음과 불협화음의 대립이다. 특정한 음계 내에서 서로 어울리는
음들이 선택되어 결합하면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편안한 협화음을 만들어 낸다. 만약 선택된 음계의 음들이 아닌 음을 연주하거나, 허용된 특정한 간격이 아닌 음들의 조합을 연 주하면 그 결과는 충돌하고 대립하는 느낌을 빚어내는 불협화음 이 된다. 온음계적인 관습에 의하면 이러한 불협화음은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반드시 협화음으로의 회귀를 통하여 해소되어 야만 한다. 이 온음계 시스템 하에서 불협화음은 긴장감을 조성 하며, 반드시
협화음으로 귀결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음악의 진행 방향을 지시하는 역할을 한다.

19세기를 거치면서 작곡가들은 점차 많은 불협화음을 작품 속 에 포함시켰으며 불협화음에서 다시 협화음으로 되돌아가는 시간 적 간격도 점차 늘려갔다. 20세기 현대음악의 출발자로 평가되는 쇤베르크의 음악도 초기에는 점차 불협화음이 증가하긴 했어도 여 전히 특정한 온음계적인 조성체계를 따랐다. 복잡한 전조와 불협 화음 구성을 통해 조성이 이미 상당히 느슨해져 있기는 했지만 다 른 작곡가들처럼 조표를 사용한 조성적 음악을 작곡했던 것이다.

하지만 1908년부터 쇤베르크의 작품에서는 협화음과 불협화음 의 구별이 사라졌다. 그는 모든 음을 동등하게 취급하고 불협화 음을 자유롭게 사용하며 조성의 체계를 붕괴하였다. 쇤베르크는 이러한 조성의 해체를 “불협화음의 해방”이란 말로 설명했는데, 이는 불협화음이 조성의 체계 내에서 협화음으로 해결되어야 한 다는 강요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불협화음을 “멀리 있는 협화음”으로 정의하면서, 다채로운 음악적 경험을 통 해 점차 발달되는
청력으로 불협화음에 대한 이해의 어려움이 사 라질 수 있다고 보았다. 즉 협화음과 불협화음 사이에는 본질적 인 차이가 아닌 단계적인 차이만이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배음체계에 대한 쇤베르크의 고유한 이해에 기 초한다. 한 음이 울리면 여러 개의 배음렬들이 따라 울리게 되는 데, 먼저 강하게 울리는 배음들이 함께 울리며 좀 더 약한 배음 들이 이를 뒤따른다. 쇤베르크에 의하면 후에 울리는 희미하게 감지되는 배음들은 우리의 귀에 생소하게 느껴지는 반면에 보다 강하게 울리는 배음들은 우리의 귀에 보다 익숙하다는 것이다. 이때 우리의 귀에 익숙한 강하게 울리는 배음들의 계열이 함께 울릴 때 협화음이
되며, 이후의 약하게 울리는 배음들은 불협화 음이 된다. 따라서 전통적인 방식의 협화음과 불협화음의 구분은 단지 상대적인 익숙함의 차이라는 것이다.

쇤베르크는 불협화음의 해방이란 전제 하에 중심조성을 포기하 는 무(無)조적 작곡방식을 택하였다. 그는 악곡이 자기 고유 소재 의 논리에서 야기되는 것이 아닌, 내적 사건에 대한 감정에 이끌 려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라 보았다. 악곡은 내적 사건을 표현 하면서 그 사건의 논리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성의 포기에 따라 악곡이 자신의 외형을 자기 고유 소재의 논리에서 더 이상 만들어낼 수 없게 되었고 이를 통해 쇤베르크는 내적
사 건의 표현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이러한 무조적 작곡방식의 추구는 쇤베르크의 음악관에서 기인 한다. 그는 음악의 목적을 우선적으로 개성의 표현으로, 더 나아 가 인간의 표현으로 보았다. 그에게 있어서 예술이란 인간의 운 명을 자신의 내면에서 체험하는 자가 외치는 비명이다. 그리고 내면에는 세계의 움직임이 있다. 밖으로 나오는 것은 단지 그 메 아리인 예술작품이 있을 뿐이다. 쇤베르크의 음악은 전통적인 의 미의 미(美)에 기인하는 것이 아닌, 진실을 추구하는 새로운 미학 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미학관을 바탕으로 쇤 베르크는 고전적인 균형과 조화를 철저히 기피하면서 극도의 대 조성을 보이는 새로운 음악을 실현할 수 있었다.

칸딘스키는 “불협화음”이라는 음악적 개념을 자신의 미술이 론을 위한 하나의 중요한 은유로서 자주 전용하였다. 그는 일 반적인 의미에서 사실주의적 회화를 협화음으로 보고 불협화음 을 “회화적인 것과 그것의 지시체 간의 협화음의 종말”, 즉 고 유색을 벗어난 자유로운 색채의 사용과 같은 사실적인 재현의 규칙을 파기하는 회화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하였다. 칸딘스 키는 조형요소들 간의 독립성, 즉 선묘와 색채를 서로에게 종 속되지 않고 자유로이
독립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추구했다. 소 묘적 형태와 색채적 형태가 각각 독립적인 생명을 유지하는 것 이다. 그는 이러한 불협화음적인 작품을 통해 불안정한 시대상 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집단주의 법 원리를 따르는 북한 가족법은 사회적 대가정의 일 부분으로서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사회적 대가정의 견지에 서 국가는 결혼생활이 원만히 이루어지도록 물질적 삶을 보장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그들이 부부관계를 올곧게 이끌어 갈 수 있도록 정치 도덕적 삶을 지도하고 후견할 수 있는 권리와 의 무를 지닌다. 백남룡의 소설『벗』은 북한 판사가 이혼소송을 제 기한 부부가 이혼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사랑과 믿 음을 회복시켜주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러나 북한의 가족법은 사회적 대가정으로서 의무를 강조하는 동시에 이혼의 자유 역시 보장하는데, 이혼청구의 용인여부는 우 선적으로 ‘부부생활을 더 이상 계속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기준 으로 결정된다. 부부생활을 더 이상 계속할 수 없는 경우란 부부 관계의 정치, 도덕적 기초를 상실하였거나 배우자 일방이 부부의 사랑과 믿음을 배반한 사유 등을 의미한다. 그러나 아무리 개인 의 인격이 존중될 필요가 있다고 하더라도 북한에서의 이혼은 사
회적 대가정의 해체와 직결된 문제이다. 이혼은 사회정치적 문제 이기 때문에 이혼사건을 처리할 때에는 국가와 사회의 이익, 혁 명의 이익과 결부시킬 것이 요구된다. 또한 판사는 이혼당사자만 이 아니라 자녀들의 이익을 신중히 고려해야 하며, 개인이기주의 와 결부된 이혼을 제한할 것이 요청된다. 즉, ‘집단의 이익’과 ‘개 인의 욕망’이라는 딜레마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 자유주의적 법 원리는 각 개인의 자율성을 강조하면서 자신 의 삶은 자기 책임이라고 여긴다. 자유주의에 따르면 각 개인이 어떠한 도덕적 가치에 따라 자기 삶을 영위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선적으로 각 개인에게 맡겨져 있다. 원칙적으로 자유주의는 도 덕에 관해서는 자유방임적 입장을 취한다. 국가권력의 행사 근거, 다시 말해 자유의 한계는 개인이 타인에게 해악을 미쳤을 경우이 다. 타인에게 해악을 끼치지 않은
개인의 문제는 설득과 토론의 대상일 뿐 국가권력은 개입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유주의에 인정 되는 개인의 자율성은 모든 경우에 인정되는 것은 아니며, 자율 성이 한계상황에 봉착되었을 때 후견주의적 국가의 간섭이 정당 화 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북한의 ㉡ 집단주의 법 원리에 대해서도 적용될 수 있다. 다만 논리는 역방향으로 진행된다. 북한은 후견주의적 관점에서 집단주의의 도덕준수 의무를 개인에게 요구한다. 각 개 인의 자주적 요구는 이러한 집단주의 도덕에 맞게 실현되어야 한 다. 국가권력은 개인의 자주적 인권을 제한할 수 있으나 그것은 자유주의 원리인 ‘해악의 원리’가 아니라 집단주의 도덕에 따르지 않음으로써 집단 내에 발생할 수
있는 해악을 제거하기 위함이 다. 국가는 집단주의 도덕에 따르지 않은 자에게 직접 권력을 행 사할 수 있다.

그러나 집단주의적 원리는 한계상황에 봉착할 수 있다. 개인의 행복을 위해 후견주의를 포기하고 개인의 자율성에 맡겨야 할 때 가 있다는 것이다. 집단이 설득과 교양, 법에 의한 제재를 동원한 다고 할지라도 소설『벗』에서처럼 후견적 국가작용에 의해 사랑 과 믿음을 배반당한 여인에게 부부관계를 계속 유지하라고 요청 할 수 없다는 점은 이러한 한계상황을 반영한다. 나아가 그것이 사회적 불안요소로서 집단 전체에 해악을 끼칠 우려가 있다면 오 히려
사회적 대가정의 안전을 위해 가정의 해체를 용인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자유주의 하에서 개인의 자율성을 통하여 극복할 수 없 는 개인적, 사회적 위험성이 예견될 경우 후견주의적 개입이 용 인될 수 있는 것처럼, 북한의 집단주의 하에서 국가의 후견적 개 입만으로 극복할 수 없는 개인적, 사회적 위험성이 예견될 경우 개인의 자율성에 의한 행복추구를 용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집단의 해체, 즉 이혼이 집단주의 법 원리에서도 가능 할 수 있다. 또한 집단주의 법 원리에서 책임에 대한 관점은 개
인의 책임과 사회의 책임이 엄격하게 분리되지 않는다. 양자는 상호 밀접히 연결되어 있으며 특히 사회의 책임과 연계되어 있는 범위 내에서 개인에 대한 책임이 제한적으로 인정된다.

채영일은 정진우 판사에게 채순희의 이혼판결을 종용하면서 “허, 그러면 국가적 판도에서 생각합시다. 털어놓고 말하는데 내 동생네 집은 가정이 아니라 하숙집이요. 한 부엌에서 끓여먹 고 아래웃방에서 갈라 자고 … 한심한 일이요. 만약 이혼을 시 키지 않아서 동네를 더 소란스레 하고, 치정 관계를 빚어내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고 … 더 나아가서 폭발적 성격을 띠어 돌 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판사 동무는 알아 두시오.” (중략)

그러나 정진우 판사는 여인의 인권을 위해 사건을 기각하지 못 했다. 여인이 조금이라도 반대의사를 표명했더라면 이혼시키지 않을 것이다. 재판심리 단계에서 여인의 호소는 뜻밖에도 강렬 하였다. 여인은 남편의 사랑을 더 바라지 않았으며, 보통의 인간 적 대접을 받고 싶어 했으나 그것도 없었다. (중략)

부당한 이혼소송은 기각을 하고 가정을 유지시키는 것이 합당 할 것이다. 그러나 산골에서 나무를 심으며 혼자서 키워온 그 여성이 판매과장과 의좋게 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은 지성의 차이로 갈라진 것이 아니다. 판매과장이 순박한 아내를 인간적 으로 멸시했다. 십년 세월 건강과 청춘, 고뇌를 바쳐 남편이 공 부하도록 뒷받침해준 그 여성은 자기의 삶의 가치, 인격을 더는 상실할 수 없었다. 그날의 법정에서 판결은 열 살인 딸애만 어 머니가 키우고
일곱 살인 아들은 아버지가 양육하도록 했다. 여 인에게 부담을 지울 수는 없었다. 아들애의 물질생활면과 관련 된 장래도 고려해야 한다. 그리하여 오누이마저 갈라졌다.

– 백남룡,「벗」-

우리의 현재 행위에 의해서 미래 세대의 환경이 달라질 수 있 다는 주장은 놀라울 것이 없다. 그런데 우리가 잘 깨닫지 못하는 점은 우리의 현재 행위가 미래의 후손이 누가 될 것인가를 결정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우리의 어떤 행위 때문에 어떤 사람이 존재할지 말지가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2001년 9·11 테러로 사 망한 사람은 약 2,500명이다. 만일 이 사건이 없었다면, 이들로부 터 많은 후손들이 생겨났을 것이다. 사망뿐만
아니라 출생도 미 래 후손 집단의 동일성을 결정하는 요소이다. 급격한 인구 감소를 막기 위해 정부에서 내놓는 출산 장려 정책이나 질병을 예방 하거나 완치하는 의료 기술은 미래 후손 집단의 규모와 성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철학자 파핏은 이러한 문제의 윤리적 함축을 논의한 바 있다. 셋째 아이를 낳겠다는 결심은 미래 후손 집단의 규모를 확대하는 행위이다. 한편 집단의 규모는 바꾸지 않으면서 집단의 구성원을 변화시키는 행위도 있다. 한 젊은 부부가 첫 아이를 집 장만 전 에 낳을지, 장만 후에 낳을지를 고민한다고 하자. 어떤 결정을 내 리느냐에 따라 그들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이는 다른 존재라고 해 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직관적으로 한 아이의 동일성은 어느 시
기에 그 아이가 잉태되는가에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파핏은 이를 ‘시간 의존성 주장’이라고 부른다. 이에 따르면 어떤 특정한 사람이 그가 실제로 잉태된 그 시간에 잉태되지 않았다면 존재하 지 않았을 것이다. 이처럼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미래 후 손의 동일성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서 발생하는 윤리적 문제를 파핏은 ‘비동일성 문제’라고 한다.

예를 들어 14살인 A가 임신하여 아이를 갖겠다고 말한다고 해 보자. A에게 그것은 좋은 결정이 아니라고 설득하는 방법은 무엇 일까? 우리는 A에게 지금 아이를 갖기로 해서 태어날 아이의 불 행한 삶을 상상해보라고 말할 수 있다. 10년 후 어른이 되어 결혼 을 한 뒤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는 훨씬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 을 것이라고 설득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10년 후 태어날 아 이는 지금 A가 가지려고 하는 바로 그 아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 갖지 않기로 한다면 태어나지도 않을 존재를 두고, 10년 후 태어나는 것이 그 아이에게 좋을 것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동일성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두 가지 이상의 대안을 비교 하여 어떤 대안이 나은지를 판단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 많은 사 람은 측정 기준만 제시된다면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 한다. 아이의 행복을 그 아이가 누릴 쾌락의 양으로 측정할 수 있다고 볼 때, 10년 후 아이를 갖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는 것 은 이러한 직관에 부합한다. 그런데 파핏이 지적하듯이 대안들 사이의 비교는 측정 기준뿐만 아니라 주체도 고려해서 이루어져
야 한다. 어느 아이의 행복이고, 어느 아이가 누릴 쾌락의 양인 가?

이 문제에서 우리가 직관적으로 생각하는 정답은 논란의 여지 가 별로 없어 보인다. A는 지금 당장이 아니라 10년 후에 아이 를 갖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문제는 이런 직관을 논리적으로 정 당화하는 이론이다. 비동일성 문제는 그런 이론을 구성하는 데 커다란 어려움으로 작용한다.

정부는 유류비 인하 정책 P의 실시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유류 비를 낮추면 많은 가정이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지고 그 결과 인구 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늘어난 인구를 G-인구라고 하자. 시간이 더 흘러 유류세 인하 정책의 결과로 석유 고갈과 세계적 경제 위기가 발생하여 G-인구에 속하는 사람들의 삶의 질이 현 저히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정부는 정책 P를 실시해야 하는가?